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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릇 바이벌스버그 공원
− 붉은 도시의 축제, 제4회 마라케시 비엔날레
콘크리트의 진화
콘크리트, 구조에서 표현으로 _ 넬슨 모타
− 아데제 종교 미술 박물관과 광장 _ 메니스 아르끼떽또스
− 유리혼조 시 카다레 문화센터 _ 치아키 아라이 어반 앤 아키텍쳐 디자인
− USJ 대학 스포츠 혁신센터 _ 109 악쉬텍츠+유세프 토미
− 바이센테니얼 시민회관 _ 루씨오 모리니+GGMPU 아르끼떽또스
− 망통 장 콕토 박물관 _ 루디 휘치오티 악쉬텍트
− 아르고스, 시멘트 공장의 전기 발전소 건물 _ MGP 아키텍쳐 앤 얼바니즘
− 브라질 중소기업진흥청 _ 그루포 SP
마드리드 카라방첼
도시를 다시 쓰다 _ 마르따 곤살레스 안똔
− 168세대의 소규모 공공주택 _ 코코 아르끼떽또스
− 금속 상자를 쌓은듯한 82호의 공공주택 _ 아만-까노바스-마루리
− 이동식 벽으로 만들어진 집 _ 아란구렌 앤 갈예고스 아르끼떽또스
− 차양이 있는 공공주택단지 _ 셰퍼드 롭슨
− 101세대 공공주택단지 _ 호세 크루즈 오발레
− 삶을 위한 기계, 102 공공주택 _ 도스마쓰누 아르끼떽또스
− 88세대의 공공주택 _ 알레한드로 자에라 폴로 아키텍쳐
− 141세대의 공공주택 _ 모포시스
C3는 전세계에서 그 품격과 품질을 인정받고있는 탑클라스의 프레미엄 잡지입니다. 한국 건축잡지로는 유일하게 뉴욕, 런던, 파리, 도쿄 등을 비롯해 전세계 글로벌 도시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다렌 대학과 라이센스 계약을 맺어 중국어판이 배포되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 판매가 시작된 중국어판은 중국 전역과 대만 홍콩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C3 334호 (2012년 6/12)
콘크리트의 진화
콘크리트, 구조에서 표현으로 _ 넬슨 모타
콘크리트를 건축 재료로 사용한 지도 어느덧 100년이 넘었다. 지난 세기, 철근 콘크리트는 근대사조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일반 주택 양식을 새롭게 해석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콘크리트는 언제나 대중에게 가깝고도 먼 존재였다. 콘크리트에 대한 건축가들의 신뢰는 거의 맹목적인 단계에까지 이르렀지만, 대중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기만 하다.
이 글에서는 콘크리트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기만 한 존재인지, 아니면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콘크리트가 여전히 전위적인 건축적 표현을 가능케 하는 특징이 있는지, 이미 일상적인 행위로 전락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함께 담고있다.
전후 건축문화에서 콘크리트는 레이너 밴험의 ‘새로운 브루탈리즘’에서 알려진 대로 윤리적 접근과 미학적 접근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대한 논의를 키워나갔다. 당시 건축가들은 철근 콘크리트의 구조-기술적, 구조-상징적 재료로서의 가능성을 탐구했고, 그 결과, 구조적 요소로 직접 쓰이는 경우와 건물을 ‘단장’하기 위한 재료로 쓰이는 경우로 나뉘었다.
콘크리트의 기술적 의미와 상징적 의미 사이의 변증법적인 관계는 오늘날 건축문화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서 재료의 역학적 특성은 오래 전부터 입증된 사실이지만, 건물 마감재로서의 콘크리트의 잠재성은 새롭게 발견된 것이다.
콘크리트에 대해 양분화된 대중의 반응은 건축가들이 이를 중립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들은 주로 콘크리트를 주어진 재료의 조건이나 사회 정치적 맥락에 대한 자신의 명백한 관점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분명한 사실은 구조를 넘어 표현의 재료로 진화하고 있는 콘크리트와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C3는 전세계에서 그 품격과 품질을 인정받고있는 탑클라스의 프레미엄 잡지입니다. 한국 건축잡지로는 유일하게 뉴욕, 런던, 파리, 도쿄 등을 비롯해 전세계 글로벌 도시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다렌 대학과 라이센스 계약을 맺어 중국어판이 배포되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 판매가 시작된 중국어판은 중국 전역과 대만 홍콩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C3 334호 (2012년 6/12)
콘크리트의 진화
콘크리트, 구조에서 표현으로 _ 넬슨 모타
콘크리트를 건축 재료로 사용한 지도 어느덧 100년이 넘었다. 지난 세기, 철근 콘크리트는 근대사조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일반 주택 양식을 새롭게 해석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콘크리트는 언제나 대중에게 가깝고도 먼 존재였다. 콘크리트에 대한 건축가들의 신뢰는 거의 맹목적인 단계에까지 이르렀지만, 대중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기만 하다.
이 글에서는 콘크리트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기만 한 존재인지, 아니면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콘크리트가 여전히 전위적인 건축적 표현을 가능케 하는 특징이 있는지, 이미 일상적인 행위로 전락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함께 담고있다.
전후 건축문화에서 콘크리트는 레이너 밴험의 ‘새로운 브루탈리즘’에서 알려진 대로 윤리적 접근과 미학적 접근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대한 논의를 키워나갔다. 당시 건축가들은 철근 콘크리트의 구조-기술적, 구조-상징적 재료로서의 가능성을 탐구했고, 그 결과, 구조적 요소로 직접 쓰이는 경우와 건물을 ‘단장’하기 위한 재료로 쓰이는 경우로 나뉘었다.
콘크리트의 기술적 의미와 상징적 의미 사이의 변증법적인 관계는 오늘날 건축문화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서 재료의 역학적 특성은 오래 전부터 입증된 사실이지만, 건물 마감재로서의 콘크리트의 잠재성은 새롭게 발견된 것이다.
콘크리트에 대해 양분화된 대중의 반응은 건축가들이 이를 중립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들은 주로 콘크리트를 주어진 재료의 조건이나 사회 정치적 맥락에 대한 자신의 명백한 관점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분명한 사실은 구조를 넘어 표현의 재료로 진화하고 있는 콘크리트와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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